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29번째 시간으로서 “능력의 주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그 전후 흐름으로 본다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일단 이 본문 내용에만 집중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이른바 예루살렘 성전은 역사적으로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이요, 또 하나는 스룹바벨에 의해 세워지고
헤롯 왕이 마지막으로 증축한 이른바 헤롯 성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헤롯 성전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46년에 걸쳐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웅장했나보죠?
마가복음 13장 1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イエスが宮から出て行かれるとき、弟子の一人がイエスに言った。「先生、ご覧ください。なんとすばらしい石、なんとすばらしい建物でしょう。」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20절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ヨハネの福音書2章19節~20節
“19.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この神殿を壊してみなさい。わたしは、三日でそれをよみがえらせる。」
20.そこで、ユダヤ人たちは言った。「この神殿は建てるのに四十六年かかった。あなたはそれを三日でよみがえらせるのか。」”
예수님께서는 회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이 성전을 헐어봐라. 그래도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는 뻔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직접 입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정말
참 어이가 없어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라고까지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합니다.
“아니, 이 성전은 46년 동안 걸려서 지었는데, 당신이 어떻게 해서 3일 만에 다시 짓겠다는 거야” 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주석서나 신학자들은 백성들의 무지함을 탓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정말 어리어리한 성전을 사람이 수십년 걸려서 세웠는데 이걸 헐어도 자기가 3일이면 다시 세우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말처럼 들립니까. 여러분께서는 만약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할렐루야 그랬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럴 자신은 없어요. 어쩌면 역시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잠시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성경이라고 하는
책은 사람의 생각으로 보았을 때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지금으로부터 우리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서기 30년 경에, 저기 먼 나라에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대요.
그런데 그것은 한참 뒤에 태어날 우리들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이잖아요.
이걸 믿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이걸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사실 성경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 처음부터 보세요.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말도 안 되는 소리!
창세기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神は仰せられた。「光、あれ。」すると光があった。
말도 안 되는 소리!
더 해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세계가 물에 잠길 정도의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셨다는 것, 100살까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이 한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 홍해가 갈라져서 수 십만 명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건너갔다는 것, 그 많은 사람들이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 난공불락의 여리고성 주위를 며칠 동안 빙글빙글 도니까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 이와 같은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이를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감사합니다.
자,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앞서 말씀드린 내용을 믿으신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성경에 써 있으니까 믿습니까. 솔직한 말씀으로 그게 성경에 써 있다는 것만으로 믿어지십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정신승리의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에 적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옛날부터 들어왔으니까 그냥 믿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와 같은 믿음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험이나 환난이 다가온다면 순식간에 무슨 아침햇살에 이슬이 말라
없어지듯이 사라지고 말 믿음, 당장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우상으로 돌아가버리고 말 그런 작은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에 적힌 말씀이 내게 응했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얼마나 많은 내용이 있습니까. 복음서만도 보세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시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끝나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라는 찬양에 나오는 가사 순서대로 한 번 볼까요?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됐대. 성난 파도가 잠잠해졌대.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보이게 됐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대.
이 말을 듣고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한다고요? 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 사람한테 말하기를, 아니야, 성경에 적혀 있으니까 이건 정말로 일어났던 일들이야, 하고 여러분이 말씀을 해드린다면 그
사람은 뭐라고 말할까요.
“그러든지 말든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에요.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성경에 있는 믿음이 전혀 나와는 관련이 없게 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놀랍고 아무리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고는
해도 그것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있는 내용이 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예, 말로 하자면 간단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 나와 상관있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에 있는 말씀이 나와 상관있게 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드리잖아요? 그럼 의외로 많은 분들이 <기도>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다른 나라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나라는 이 기도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기도를 해봤자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말하면 내가 다 들어주겠다. 주님이 그러시던가요?
이와 비슷하지만 분명 다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のことばがあなたがた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何でも欲しいもの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それはかなえられます。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 그렇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뭐가
우리 안에 거하면요? 예,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하는 전제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길거리에 있는 자판기를 눌렀더니 아무것도 안 나와요. 그러면 그 자판기가 고장 난 것입니까. 아니에요. 자판기에는 돈을 넣었을 때
단추를 눌러야 나온다는 전제조건이 있잖아요.
기도 응답에도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고 무조건
기도만 해요?
자, 여러분, 돈 좋아하시죠. 오늘부터 더도 말고 10억만 달라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볼까요? 기도 응답을 해 주신다고
믿습니까.
자,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봤어요. 그런데 며칠 해도 10억이 생기기는커녕 내가 가지고 있는 돈만 줄어가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이, 뭐, 기도해 봤자 별수 없네.
그러면서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게 과연 믿음입니까. 이게 과연 신앙인가요?
그러니까 믿음을 가져봤자 성경은 성경이고 이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제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은혜충만? 성령충만? 예, 우리 좀 솔직해 집시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부자 되게 해주세요. 출세하게 해주세요……그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 시점에서 실제로 말씀을 한 번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본다면 크나큰 성공을 거둔 인물을 꼽는다면 누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은 어떨까요. 그는 재산이 넉넉했습니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보낸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조카 손자인 라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세기 24장 35절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主は私の主人を大いに祝福されましたので、主人は富んでおります。主は主人に、羊や牛、銀や金、男女の奴隷、らくだやろば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
아브라함은 신앙적으로 볼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경제적으로 넉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떻습니까. 그는 비록 젊은 나이에 고생은 했지만 나이 서른에 당시 최고 선진국인 애굽의 총리, 제2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다윗도 만찬가지지요. 젊은 나이에 아무런 이유 없이 사울 왕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만 역시 나이
서른에 이스라엘 왕으로 오르게 됩니다.
일단 여기까지 볼까요?
자, 그렇다면 한 번 우리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믿음의 조상으로 시켜 달라고 기도한 적 있었습니까.
거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 있었습니까.
요셉은 자신이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까. 다윗이 자신을 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나옵니까.
아니에요. 물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위기에서 구원해달라는 기도는 했지요. 하지만 나 좀 출세하게 해달라고, 나 좀 돈 좀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적이 없었어요.
이와 같은 말씀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시간을 들이면서 돈 잘 벌게 해달라,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말씀 없는 기도, 그야말로 공허한 기도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 여러분이 사장님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어떤 신입사원이 다짜고짜 사장님인 여러분께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한테 좋은
컴퓨터를 사 달래요. 그리고 큰 책상도 주시고, 자기 방을 하나 달래요. 그리고 자기가 살 집도 마련해주시고, 좋은 차도 사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럼 여러분께서는 이 신입사원한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 들어주겠습니까. 그런 사장님이 어디 있어요.
아니, 이봐. 그게 자네한테 무슨 필요가 있는데 그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내가 시킨 일이나 해.
하지만 이 신입사원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간절하게 구하면 들어 주신다는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매일마다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사장님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매일마다 사장님한테 자신의 요구사항을 간청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사장님이시라면 이 열성적인 신입사원의 요구, 좋은 컴퓨터, 좋은 책상, 좋은 개인 사무실,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이 끈질긴 신입사원에게 사 주시겠습니까.
사실 말도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여러분께 그 요구사항을 들어줄 돈의 수 십 배, 수 백배의 경제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신입사원의 철없는 요구를 들어줄 사장님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혼을 내서 돌려보내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당장이라도 잘라버리지 않겠어요?
반면에 어떤 사원은 열심히 주어진 일을 잘 합니다. 신입사원에게 맡길 일이 솔직히 뭐가 있겠습니까. 복사를 해오라면 복사를 잘
해오고, 간단한 심부름을 시켜도 군소리 안 하고 성실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 작은 일을 하나 맡겼더니 얼마나 꼼꼼하고 열성적으로 하는지 몰라요. 그러자 사장님은 이제 조금씩 큼직한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여기에는 조금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도 필요할 것 같고, 거래처 상대방과 격을 맞추려면 승진도
시켜줘야 할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부하직원도 붙여주었습니다.
이런 것은 그 직원이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직원에게 필요한 것들을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더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우선 무엇보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게 되면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이 곳은 그냥 내가 있는 것이 아니구나, 주님께서
나에게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이요, 주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응답을 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능력이 있습니다. 3일 동안에 성전을 세울 정도가 아니라 순식간에 온 천하만물을 지으실 능력도 그리고 폐하실 능력도 있으신
분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공허한 기도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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